눈물로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
‘내 아들 지원이’! (행운의 지원이)
언제나 든든한 나의 아들 지원이는 결혼 7년 만에 '하나님 아버지 곁에서 꽃바구니 타고 온 참으로 귀하고 사랑스러운 우리집 장남'이자 자랑스러운 아이다.
이렇게 이쁜 아가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행복도 잠시, 나의 아이 지원이는 첫 돌이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소변을 못보아 소아병원을 찾아 검사하고 보니 “방광에 횡문근육종이라는 악성종양이 자라 요도를 막고 있다.”는 청천병력 같은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이제 태어난지 생후 1년 밖에 안되는 아이에게 소아암이라는 판정은 아이에게나 우리 가족에겐 받아드리기 조차 어려운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입원하고 치료를 시작한지 3년이라는 기나긴 치료를 버티고 잘견뎌 내고보니 기적과도 같이 건강을 되찾아 비로소 이제야 우리 가족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우리가족은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줄 알았다.
그런 가운데 지원이의 이상 행동이 하나둘 보였다.
“오랜 병원 생활에 지쳐 지원이가 다른 아이들 보다 발달이 조금 느린거야!“라며 스스로 자책도 하고 안도하며 있을 때 병원의 진단은 달랐다.
"느린 정도가 지나쳐 발달장애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정을 내렸다.
현실을 부정하며 이병원 저병원을 찾수아 다니며 수차례의 정밀검사 끝에 발달장애로 최종 판정받고서야 또 한번 좌절을 할 수밖에 없는 그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또 주시나요?” 하나님께 몇 날 몇 일을 눈물로 얼머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지원이는 스스로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고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핑퐁 대화처럼 오가지도 않았으며 사람의 눈 마저 피하고 있었다.
사회생활은 꿈에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원이가 어릴 때에는 안타까운 사정을 아는 주변의 배려로 말하며 이상한 행동을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해해 주고 배려하고 많은 부분을 도와 주었다.
그러나 지원이가 남의 가방에 있는 음료수를 내 것인냥 집어들거나, 길에서 큰소리로 고함을 내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을 하면 나는 늘 죄라도 지은듯 사과를 준비하고 여기저기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고개를 숙였다.
“우리 아이가 자폐라서 그럽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 미안하다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매일매일 일상이요 눈물이었다.
일상이 그렇다보니 어느날은 문득 사람들을 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느꼈다.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도 다른 사람이 오면 얼른 아들 지원을 데리고 비상구 몸을 피하고 걸어 올라가야 했다.
나의 삶 자체가 황폐하다 못해 피폐해 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기어이 일이 터졌다.
아들 지원이가 “길을 가다 알지못하는 어린 여자아이 가슴을 손바닥으로 만지며 훑고 지나 갔다.”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 신고라니 이 황당한 상황에도 경찰은 장애아라고 편의를 보아주거나 배려를 하지도 않고 “원칙데로 사건을 처리 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니 오히려 더 범인을 몰아세우듯 취조를 하고 윽박지르기까지 하는 경찰의 오버행동에 아이는 점점 불안해 하더니 나만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울 기세로 소리를 지르며 이상 행동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는 억울한 지원이의 행동을 해명하고자 의사의 증언과 관련 증거자료를 찾아 백방으로 헤메었다.
그 결과 “자폐는 특성상 손으로 벽면을 훑고 다니는 이상 행동을 동반 하기에 여자아이의 가슴을 흟은 것이 아닌 자폐스펙트럼 갖은 장애인의 특이 행동으로 특히 아동일 경우 이동을 위해 모든 사물을 벽으로 판단하고 취하는 일반적 행동이다.”는 의사 증언을 바탕으로 소견서를 작성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 제출함으로써 다행이 판사의 소처분 없음으로 결론을 내려 무사히 돌아왔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1년 넘게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며 지칠데로 지친 육체와 상대방이 요구하는 합의금으로 인하여 마음엔 더없는 깊은 상처만 남았다.
지칠데로 지친 몸과 맘으로 급기야 나는 지원 아빠에게 “사람들이 없는 지리산 골짜기에 가서 살자!“고 했다.
모든 것이 싫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싶었다.
나에게 시련만 주시는 하나님 마저 원망 했었다.
그럴때도 있었다.
이제는 꿈만 같았던 그 시간도 모두 지났다.
얼마나 베겟닢 적시며 기도 밖에는 할 수 없었던 나날 이었던가?
어느덧 지원이도 주님 안에서 무탈하게 자라 16살이 되었다.
그 많은 해가 흘러도 이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아들 지원은 아직도 남의 유모차에 있는 음료수를 내것인냥 그냥 먹는다.
그런 지원을 보며 타인에게 늘 이해와 배려를 바랄 수만 없는 노릇이다.
최대한 조심하며 몸을 사리고 또 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하루하루가 감사의 시간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내일을 기대해 보며 아들의 암까지도 기적같이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어저면 또 한번의 기적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아직도 자폐스펙트럼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도 어색하다.
아니 발달장애인을 터부시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원이가 장애인이 된 시간도 많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지원이가 장애인이 되고 나서 성장하며 많은 변화가 있었고 장애인에 대한 시각도 많이 성숙해졌지만 아직 미성숙한 부분이 존재한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 지원이가 어른이 될 때쯤이면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기타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각도 많이 성숙하겠지!
언젠가 TV에서'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서야 우리아이 같은 자폐성 발달장인에 대한 시각도 조금씩 성숙해 졌다.
오늘도 나는 감사의 기도로 두 손 꼭 모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범사에 감사라는 것을 깨닫기에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른것 같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감사의 찬양을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