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옹고집의 처와 자식, 어머니 등 가족들의 모습이 저마다의 개성과 함께 유쾌하게 소개된다. 유쾌하게 대사를 쏟아내는 배우의 바로 곁에는 한 몸처럼 움직이며 실감 나는 표정과 몸짓으로 대사를 전하는 수어통역사가 나란히 서 있다.
단순한 통역을 넘어 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무대를 채우는 이들의 모습은 '누가 진짜 연기자인가'라는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20일 국립극장 뜰아래연습장에서 미리 만난 국립극장의 기획공연 '옹옹옹'은 고전 소설 '옹고집전'을 비틀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유쾌하게 허무는 무장애(배리어 프리) 음악극이다.
연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으로 제61회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받은 서동민 작가와 강훈구 연출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
이번 작품은 각 배우에게 1대 1로 수어통역사가 배치되는 '그림자 통역' 방식을 도입했다. 통역사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무대 위 또 한 명의 '퍼포머'로 활약한다.
시연 후 열린 간담회에서 강훈구 연출은 "지금까지 관람했던 배리어 프리 공연과는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며 "관객들이 '누가 진짜 옹고집이지?'라는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누가 진짜 배우지?'라는 고민도 함께 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옹고집전'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인색한 부자 옹고집이 가짜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쫓겨나는 원작의 틀을 유지한다.
다만 가출 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기준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처지를 옹고집에 투영해, 인공지능(AI)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짜와 가짜', 그리고 '사회적 정상성'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로 확장했다.
실옹가(진짜 옹고집) 역의 김유남을 제외한 출연 배우들이 돌아가며 허옹가(가짜 옹고집)와 다른 배역들을 바꿔 연기하는 '역할 바꾸기' 기법을 활용해 '진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서동민 작가는 "누군가를 가짜로 몰아내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진짜일 수 없다는 것이 결국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라며 "노래 가사 안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등 선 밖으로 밀려난 다양한 사람들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깊이 있는 주제를 담아내면서도 무대 위는 말장난과 성대모사 등 엉뚱하고 유쾌한 장면들로 웃음을 자아낸다.
강 연출은 "기본적으로 재밌는 것을 좋아해 연습 때도 관객들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고민했다"며 "남녀노소는 물론 장애인 관객까지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게 되는 만큼, 모두가 한자리에서 함께 웃고 슬퍼하는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2026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수상팀 추다혜차지스의 보컬 추다혜를 비롯해 김솔지, 지혜연, 김유남, 류세일 등이 무대에 오른다.
청각장애를 딛고 10년 만에 음악극 무대에서 노래를 선보이는 지혜연은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는데 10년 만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꿈에서도 노래할 만큼 벅차고 떨린다"며 "음악감독님과 동료 배우들이 제가 듣기 불편한 소리를 세심하게 살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공연 수어 통역을 담당한 김홍남 수어통역사는 "음성언어가 지닌 리듬과 음악을 인지하기 어려운 농인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언어 감각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이 컸다"며 "배우와 통역사가 함께 뛰고 호흡하는 무대 안에서 다 함께 웃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옹옹옹'은 내달 3∼6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실시간 자막과 음성안내 수신기를 통한 음성 해설도 함께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