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 1천그루 심어놓고는
"1천억원을 벌겠다!" 고
벽오동 심은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ㅡ
이런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모가원의 정은순대표를 만났을때,
13년전, 요리전문가로 짱짱하게 활동하던 그녀가 사업가가 되기위해 결단을 내렸다는데 ᆢ
그 결단이 "모과나무를 심자!" 였다.
사람들은 다 웃었다. 농담인줄 알고 ㆍㆍ
충남 당진 2만평 농지에 모과나무 1000그루를 심었다.
나무는 잘 자랐고 올해도 청년의 주먹같은 모과열매 1만개 정도를 수확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사과도 아니고 모과 1만개를 어쩌냐? 고,
봉황이 날아들길 기다리며 벽오동을 심었다는 그 뜻이 그리 심오한데 모과나무 1000그루를 심은 뜻은 또 오죽 하겠는가?
사과도 아니고 견과도 아닌 모과나무를 심어놓은 그녀에게 사람들은 물었다.
"아니, 하필 모과가 뭐냐?" 고
그때마다 그녀는 "눈물의 씨앗!" 이라고 답했다.
나무도 알아서 막 자라는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칭칭대며 꽃을 피우고 바람부는 날 하염없이 잎을 떨구며 앓기도 하고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모과열매를 후두둑 떨어내며 중병을 치르기도 했다.
그 때마다 돈이 들어갔다.
겨우 수확을 해도 보관을 위해 또 돈이 든다.
돈이 되기는 커녕 그야말로 눈물이 되어가고 있는 모과는 그녀에게 "생인손"처럼 아팠다.
"제가 모자라 보이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미쳤다고 했어요.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ᆢ"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요리전문가로 인정 받으며 불혹의 나이가 된 정은순대표는 어느날, 불같은 유혹에 이끌려 조리대를 뛰쳐 나왔던거다.
"사업가가 되고 싶었어요. 일등 요리사가 내 꿈이 아니라는걸 좀 늦게 알아버린 거지요. 요리가 그 만큼 재미있었 거든요."
요리 한가지를 알면 열가지 버전으로 펼쳐 보였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천부적 요리사" 라고 칭했고 그 유희를 즐기며 불혹의 나이까지 흥겹게 살았다.
남들이 힘겹게 살아온 시절을 그녀는 흥겹게 살아온 거다.
" 남들은 유혹을 접을 나이라고 말하는데 제겐 그야말로 유혹의 전성시대가 40대에 열렸어요. "
충남 당진의 멀쩡한 땅에 모과나무 1000그루를 심어놓고 1000번도 넘는 비웃움을 샀다.
깍아먹을 수도, 구어먹을 수도, 튀겨 먹을 수도 없는 이 잘 생긴 놈을 어쩔 것이냐? 고 묻는 사람들에게 퉁명스런 대답을 하게됐다.
"그만 좀 냅두라"고, 그러고 생각해보니 모과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생활공간에 그냥" 냅두고" 사는게 흔한 일이 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과를 냅두지 않았다. 건강의 아이콘인 모과를 맛있는 모과로 변신케 하는 마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모과나무 1000그루를 심은 뜻은?"
"1000 억원을 벌려구요!" "헉!" 이다 정말,
오죽하면 "눈물의 씨앗" 이라고 본인이 말해놓고 이제는
그 모과로 1000억원을 벌겠다고?
"사람들 말대로 내가 과일나무를 심어서 무슨 수로 1000억원을 벌겠어요?"
모가원 대표 정은순은 1000억원을 목표로 모과나무 1000 구루를 심었단다, 모과에 마법의 주문이라도 날리는 걸까?
"공차기도 1등하면 1000억원 벌 수 있잖아요?
1등에겐 찬스가 있어요. 그래서 모과로 1등 할려구요.
그래서 제가 모과를 심은 거예요. 제가 13년 전에 준비했으니 1등은 이미 정해 졌고, 제품개발해서 시장만 키우면 되요."
공차기 1등하는 손흥민처럼 준비했다는 그녀의
도발적 말투에는 의기양양이 배어있다.
때때로 상륙작전을 앞둔 군인처럼 말하는 그녀에게
군대 갔으면 참 잘 했을것 같은데 그대신 고참들한테
"많이 맞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더니 똥그래진 눈으로 말했다.
" 진짜 막 때리나요?" ㅎㅎ 맞아 본 사람만 안다.
모과나무를 심어놓은 그녀가 나무만 쳐다보고 있었던건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을 만들어 내는게 핵심과제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그냥 단 맛이 아니라 건강한 단 맛 이어야 했다. 그건 자연이 빚어내야 한다고 믿었고 모과는 그 기대에 답을 했다.
모과로 청을 만들고, 차를 만들고, 과육으로 고급스런 크림을 만들며 답을 들었다.
처음 사업의 발판이었던 경기도 시흥의 (주)쿡씨ㆍ공장에서 계속 끊임없이 제품을 만들어 제품은 산처럼 쌓였고 출고없이 쌓여가는 재고품을 보고 공장책임자는 놀라서 도망쳤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을 봤다. 그리고 제갈량처럼 바람을 기다렸다.
열배가 넘는 조조의 군대와 대적하는 제갈량처럼 최선을 다한 후, 오직 '남동풍'에 명운을 걸고 모과밭을 거닐었다.
드디어 "남동풍" 이 운명처럼 덮쳐왔다.
당시에 폭풍성장을 하던 유명까페체인 에서의 납품요구가 왔고, 산더미같은 재고 없이는 아무도 감당못할 물량 이었다.
오직,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인 "모가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었다. 준비된 자 만의 기회를 기적처럼 누렸다.
3년동안 쭉 그랬다. 모과나무도 쑥쑥 자랐다.
2002년, 내친김에 중국 진출도 했다. 웨이하이에 상륙작전하듯 카페 "차통"을 열었고 1년만에 후퇴했다.
냉장음료를 싫어하는 중국인들의 식습관 뒤집기는 실패였다.
그리고 혼돈의 시절을 보내던 중 중원의 고수와 조우했다. 상상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진 은둔의 고수를 만난 곳은 경북군위에 있는 "사유원 " 이었다.
사유원은 오래된 대륙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놀라웠어요, 우선 300년 수령믜 모과나무 백여 그루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너 자신을 알라!' 고 말 하더라구요.
감히, 빠르게 걷기도 죄송한 그 공간을 천천히 걷다가
'사유원' 이라는 공간이 나를 들여다 보는 걸 느꼈지요. 압박하지 않았지만 압도적 이었어요."
경상북도 군위에 있는 '사유원'에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전세계에 강철을 팔아온 사람. 전세계 최고인 사람들만 모아서 '사유원'을 완성, 특급호텔 부페보다 비싼 입장료를 받으며 " 너 자신을 알라!"고 충고를 던지는 사람, 평생 쇠만 팔았던 철강회사 태창의 유재성 회장님과의 인연이 시작 되었다
," 덕분에 사업관을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됐어요.진정 1등이 되는건 맨 앞에 서는게 아니라 더 높이 올라서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는걸,"
그녀가 모과나무를 키우고 모과나무는 그녀의 생각을 키운듯 하다.
농업법인 모가원은 사유원과 모과 관련된 사업연대를 통해 비로소 모과1등 할 준비를 끝냈다.
때마침 중국의 복단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의 아들 심재승 (27)을 마케팅 책임자로 스카웃한 건 화룡점정,
"엄마가 사고뭉치? 인건 맞아요. 설명없이 드라마틱한 사고 칠 준비를 하시곤 합니다. 그래서 늘 긴장 하지요.
엄마의 돌발적사고와 저의 팽팽한 긴장감이 모가원의 비젼이 됩니다. 한 눈 팔 수 가 없어요."
뽀얗게 잘 웃는 스물 일곱살 청년에게서 1등 모가원의 드라마틱 파노라마를 본다.
지금, 차가운 겨울 한가운데 서있는 모과나무 1천구루는 아마도 모가원대표 정은순의 숙제 때문에 모진 결의를 다지고 있을거다.
"1천억 이래, 우리가 1억씩 책임져야해!"
눈 내리는 모가원 들판에 서있는 모과나무들은
사쁜이 다가오는 그녀의 발소리에 움츠린 어깨를 펴고
다짐하는듯 소란하다.
"세상에서 모과가 젤 쎄다는 걸 보여주자!"
정은순이 만든 " 모가원"은 그런 곳이다.